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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이라는 자체에서 지식은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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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1-08 10:51 조회3,9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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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戰後)의 정신병 - 적색 공포증, /최신해(1919 ~ 1991, 청량리 뇌병원 설립자)
( 외솔 최현배 선생의 아들 )
 
의문이라는 자체에서 지식은 생겨난다.
 
사람이란 기괴한 동물인지,
하루 종일 무엇이든 간에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가 않은 모양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무엇인가를 의심하고 걱정하고, 그리고 또 약간 안심하고 그러다가는 의심하고······.
이것이 도가 좀 넘어서면 정신병적 상태에 빠져버리는 수가 있다.
 
파스칼은 ‘사람이란 생각하는 갈대’라 했지만,
‘사람이란 의심하는 동물’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자식을 가진 사람치고, 말을 배우기 시작한 너덧살 된 자식이
연달아 무엇이든 눈에 띄는 것을 마구 물어보는 데,
어떤 때는 귀찮아져서 짜증을 내고 마는 체험을 안 가진 사람은 없을 게다.
 
여름철 어떤 날 ―
밖에서는 번개가 번쩍 하더니 천둥소리와 함께 소나기가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방안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쓰고 있고,
옆에선 다섯 살 난 아들이 창밖을 내다보면서 연달아 무엇을 물어보고 있는데,
아버지는 일에 열중하여 제대로 대답도 않는다.
 
“아버지, 하늘엔 왜 구름이 있어?”
“그건 하나님이 담배 피우시는 연기다.”
 
“왜 하늘에서 번쩍 불이 나?”
“하나님이 아마 라이터를 켜시나보다.”
 
“아버지, 하나님 라이터는 크지?”
“그래.”
 
아버지는 연달아 무엇인가를 쓰기에 여념이 없고,
아들은 추근추근하게 질문을 연발하는데, 갑자기 또 천둥소리가 요란히 난다.
 
“아버지, 이거 무슨 수리야?”
“그건 하나님이 방귀 뀌시는 소리야. 이놈아, 시끄럽다. 나가 놀아!”
 
그러자 밖에는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아버지, 비가 와서 밖에 못 나가 놀아.
아버지 하늘에서 비는 왜 와? 응?“
“하나님이 오줌 누시는 거다.”
 
“아버지.”
“······”
“아버지!”
 
한참 어린놈은 무엇을 생각하다가 다시,
“아버지, 하나님은 자지가 몇 개야?”
 
아들의 표정은 심각하고, 정신과 의사인 아버지는 무책임한 대답을 한 것을 후회하며,
무엇을 쓰고 있던 손을 쉬고 아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본다.
 
“아버지, 응, 몇 개야? 몇 개나 되게 저렇게 비가 많이 와?”
 
어른이 된 뒤에도 이런 따위의 끊임없는 의문이 병적으로 연달아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
자기 자신도 괴로워 못 견딜 만큼 무슨 의문이 연발하는 정신증상이 있는데,
대개는 강박신경증의 증상으로 생기는 것이 많다.
 
하늘은 왜 있나?
왜 해가 하나 밖에 없나?
왜 사람이 생기나?
왜 늙어지나?
왜 코는 하나 밖에 없나?
 
생각하면 자기 자신도 싱겁고 쑥스럽고,
가족에게 이야기하자니 창피한 일인 줄 뻔히 아는데
그런데도 의문은 자기의 의사에 반하여
생각 안 하려면 그럴수록 끈덕지게 자꾸 생기니 괴로울 수밖에 없다.
 
이런 증상과 비슷한 것으로 남이 나를 해치지 않나,
또 남이 나를 욕하지 않나 하고 강박적으로 늘 생각하는 증상이 있는데,
이것을 피해망상이라 한다.
 
6ㆍ25 후에 정신병자의 증세 중에
남이 나를 빨갱이라고 하지 않을까 하고
늘 걱정하는 새로운 타입의 망상이 생겨났었다.
 
사실 자기 자신은 빨갱이가 아닌데,
혹시 나를 빨갱이라 하지 않을까 하는
피해망상적인 강박관념이 생긴 정신 병자가
6ㆍ25 전쟁 후에 진찰실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빨갱이>  한 번 낙인이 찍힌 사람은 어떻게 되었고, 
그 가족들도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전쟁 중에 보고 왔기 때문이다.
 
환자 한 사람을 예로 들어 보자.
이름은 김00, 서른 세 살 된 장사꾼인데, 평안도 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다.
 
8ㆍ15전에는 어떤 관청에 근무하다가 해방 후에 토지를 몰수 당하고
친일파로 몰려 추방되자, 아버지는 화병으로 별세하고,
이 사람도 살길이 없어 6ㆍ25<전>에 월남하여 서울서 장사를 하다가 전쟁을 맞이했다.
 
[통상 이 사람 같이 전쟁 전에 월남한 사람은 “3ㆍ8선 넘어온 사람”,
전쟁 중에 중공군의 침입으로 피난 온 사람은 “1ㆍ4 후퇴 때 내려온 사람”으로 구분.]
 
6ㆍ25 동안에는 월남한 사람이라 해서 (서울이 점령당한 동안) 공산당원에게서 받은 위협은 컸고,
따라서 빨갱이라면 자기 자식도 잡아먹을 듯한 증오심을 느끼게끔 되었다고 그의 가족은 말한다.

본래의 성격은 얌전하고 말도 별로 안 하는 편이며, 단란한 가정의 충실한 남편이요, 아버지였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작년 크리스마스 전후부터 정신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루는 다방에 앉아 있으려니까, 다방 종업원 아가씨가 자기를 보면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저 사람은 빨갱이다’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한다.
 
사실은 다방 종업원이 그런 말을 했을리도 없을 것이겠지만,
정신병자에 흔히 있는 환청이었던지,
또는 그렇게 말했겠지 하는 <관계망상적>으로 <곡해>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게다.
 
그 후부터 이사람의 정신상태는 점점 나빠져서
길을 걸어가려면 아이들이 자기를 빨갱이라고 놀리는 소리가 들리고,
자기의 등 뒤에는 반드시 경찰관이 그림자같이 미행을 한다고 곡해하며,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방안에서 공연히 누가 자기를 잡으러 온다고 벌벌 떨면서
이불을 쓰고 숨도 크게 못 쉬고 살게 되어버렸다.
 
이런 지 얼마 후부터는
자기 가족들도 자기를 빨갱이라고 경찰관에게 밀고를 하지 않나 하는 망상에 사로잡혀서,
가족 전부를 외출도 못하게 가두어 놓고서는 감시를 하게 되었다.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서,
가족이 자기를 빨갱이라고 미워해서 음식에 독약을 넣어 죽일 것만 같아서,
집안 식구가 해다 주는 음식은 안 먹고 자기 손으로 물만 떠서 마시며,
간혹 손수 밥을 지어서 겨우 안심하고 조금씩 먹고 지냈다 한다.
 
급기야는 이 세상 사람들이 전부 자기 마음을 의심하고
무전기의 전파로 탐지하려 한다는 피해망상 끝에
‘이렇게 괴로울 바에야 차라리 죽어버리자’ 결심하고는 자살을 하려는 것을 발견한 가족들이
동네 사람의 힘을 빌어 병원으로 데려온 것이다.
 
진찰실에서 진찰을 받으면서도 그는 처음부터
‘나는 빨갱이가 아닙니다. 나는 아무 죄도 없습니다’하고
절을 연거푸 하면서 변명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이 환자는 물론 병원에 입원시켰는데,
매일 회진 하러 병실에 들어간 의사나, 또는 병실 속에서 일하는 간호사를 만나기만 하면
자기는 빨갱이가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남들이 자기를 빨갱이라고 모함해서 자기를 해치려고 한다는 종류의 새로운 피해망상은
다른 나라, 가령 일본만 해도 있을 수 없는 증상이리라.

남북이 양단된 이 나라의 전쟁 뒤에 갑자기 이런 환자가 늘어서 우리 병원에도 몇 사람이나 입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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